나는 이제껏 내가 친구가 많다거나, 친구 복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일상적으로 누구나 다 친구 있잖아? 그냥 그 정도의 친구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요즘처럼 멘탈이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흔들리기 쉬운 시기에

친구들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일에 응원과 위로, 혹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친구의 공감보다도

내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그 생각의 '같음'을 확인하는 그 자체로도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더라.

그런 친구를 두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했다.

 

 

지금까지 결혼생활에서 나는 많은 것을 부정당했다.

내가 익숙한 삶의 방식, 생각의 결, 그리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

 

해서 내가 틀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최대한 나는 내가 정말 틀린걸까? 내 생각이 이상한걸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되었고, 그러한 부분에서 부딪힐 때마다 물음표를 던졌다.

 

끊임없는 내 자신에 대한 물음표는 나의 생각을 더 견고하게 해주는 과정이 될 수 있지만

나의 경우 그것이 독으로 작용했다.

 

재차 타인에 의해 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행위는

내가 정말 맞는 것인지를 '검증'하는 것이 아닌 '의심'이 되어 나의 자존감과 근간은 흔들려버렸고,

내가 정말 맞는것인가? 라는 나의 선택과 판단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또한 어떤 선택이 더 옳은지에 대한 고찰은 우리에겐 곧 '갈등'을 의미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과 나의 방식이 다른 경우

아무리 내가 고민 끝에 나의 생각 A가 왜 좋은 것인지 다시 주장한다 한들, 어차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은 B이기 때문에 이런 주제는 아무런 예열시간도 없이 바로 다툼에 불을 붙는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네가 맞느냐 내가 맞느냐를 고민하는 것 조차 '시간 낭비다' '그냥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해주면 안되냐' 라고하며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 자존감을 깎았다.

결국엔 나의 생각이 맞는지에 대한 고찰을 하든 말든 그저 가정의 평화를 고를지 내가 하고싶은 걸 할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점차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낮아지고 세상에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영역이 이렇게나 좁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갈 때 쯤

정말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와 내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 드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 결혼생활의 힘듦을 토로했을 때 단 한 마디에도 바로 이해해주는 것은

거의 구원받는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즘은 이상하게 친구들에게서 개인적인 연락이 많이 오고있다.

단체로 톡을 할 때엔 몰랐던 나에게 이렇게나 관심이 있었구나, 를 느끼는 시기이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다.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더 나의 근황이 궁금할텐데 아무런 SNS도 하고있지 않아서 연락이 더 많이 온 것일 수 있으나

어쨌거나 그 또한 관심이 아닌가.

 

 

 

나에게 연락을 주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아,

내가 행복해질게.

이 슬픈 시간 잘 극복해서 더 좋은 에너지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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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는 두 가지다.

나른하고 피곤한.

때문에 동시에 굉장히 안정된 상태이기도 하다.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우울해지지도 못하는 약간 에너지에 불이 안붙는 상태다.

기쁨, 슬픔, 화남, 우울함등등 상반되는 감정의 표를 3D로 표현했을 때

XYZ축 어디에도 치우지지 않은

중간의 부유하는 어느 애매한 지점에 머무르는 감정상태라고 본다.

 

나의 경우 힘든 감정을 단시간에 마구 쏟아내고난 뒤에 그런 멍해지는 타이밍이 찾아오는데

요즘은 그런 시간이 잦아졌다.

 

 

몸은 피로하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할 기력도 없어 집안에만 계속 있다보면

몸은 여전히 늘어져도 머리로는 뭔가 할 것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잡생각들이 너무 많이 비집고들어오면 힘들기 때문에,

생각없이 볼 무언가가 필요하다 느낀 것이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충동적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틀었다.

너무 많이 봐서 지겨운 영화가 필요했다.

인묻들끼리 감정 다툼도 없고 적당히 예쁜 화면, 아름다운 음악.

거기에 무슨 대사를 할건지, 어떤 장면이 나올건지 달달 외우고있으니 내가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할 필요가 없다.

아무런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제격의 조건이 다 갖춰진 셈이었다.

 

멍때리기 좋은 영화 1순위였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후반부로 가다보면

주인공 하울이 그동안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만의 비밀 장소에 소피를 데려가는 장면이 있다.

산에 둘러싸인, 꽃이 만발한 들판과 늪과 작은 호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들판 한 켠에 덩그러니 서있는 한 채의 오두막을 보여주며

매해 혼자서 여름을 보내던 은신처라 소개한다.

 

혼자서? 하고 되묻는 소피에게

하울이 응,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어린 남자아이가

휑한 외딴집에서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장면이 상상되는 순간 전조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라, 내가 왜 우는거지 이유도 모르고 당황할 새도 없이

눈물 망치에라도 얻어맞은 듯 이유모를 서러움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난 뒤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많이 외로워서 그랬구나.

 

 

 

며칠 꽤 울고 웬만한 것으로 울지 않게되었길래 나는 내가 금방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나 어쩌면- 정상이 아닌지도 몰라.

함께 있어도 내가 많이 외로웠구나.

 

상황과 감정상태에 따라 작은 것도 이렇게 크게 보이고 다를 수 있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지금이 분명 힘든 시기이는 하나,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극복과 힐링의 시간이다.

이걸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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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배려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평일의 엄마는 일기를 쓴다, 산책을 한다는 핑계로.

오늘은 주말인데 엄마 아빠는 산에 가신다며 나가셨다.

 

혼자 있는 동안 실컷 울어나 보려고 슬픈 영화들 리스트를 찾아보았다.

내가 이런 거나 찾는 사람이 되다니.

 

네이버나 구글에 ' 슬픈 영화 추천'이나 '이별 극복법' 같은 한심한 질문을 던지는 건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별 소득은 없고 상투적인 눈물 빼기 영화나 추천해주길래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스치듯이 본 이터널 선샤인을 틀었다.

 

학교 다닐 때 신처럼 여겨지던 미셸 공드리의 작품이지만..

왠지 우울하고 난해해 보여 틀었다가 끄기를 여러 번 했던 영화였다.

'보고 싶어요' 같은 목록에 늘 들어갔지만 절대 누르지 않는 몇 개의 영화 중 하나였다.

 

 

지금이 기회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텅 빈 지금 같은 때 냉큼 틀어버리기 좋을 것 같다.

 

 

 

 

 

 

긴 영화가 끝났을 때

집에 아무도 없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러닝타임 내내 펑펑 울었다는 누군가의 감상평과는 달리

나는 영화 거의 끝까지는 괜찮았는데.

 

내게 아직도 이렇게 머리가 아프도록 엉엉 울 눈물이 남아있다는 게 놀라웠다.

물에 빠진 것 마냥 머리가 울리도록 수건을 틀어막고 울었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들은

나는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었을 뿐이다...

 

 

 

 

 

언젠가는 생각했다.

너를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면 어땠을까?

너를 다시 만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너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안다.

 

너를 다시 만나도, 바보 같은 나는

부족하지만 그런 그대로의 너를 사랑했기에 다시 만나도 널 사랑할 것을 안다.

 

다시 만나도 상처받고 같은 결과를 맞이하겠지만,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은 절대 뿌리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추억과 기억들은 나를 병들게 해도 쉽사리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

아픔이 군데군데 얼룩져있어도 절대 버릴 수 없는 류의 것이었다.

다시 틀지 못해도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게 되는 아끼던 LP판처럼.

 

그 시간이 네가 함께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 예쁜 순간을 통째 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그 시절의 내 인생 자체라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차마 너를 지울 수도 없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다.

며칠 전,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거 알아?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가 신데렐라 옷이랑 구두가 다 찢겼을 때 나타났잖아

 

신데렐라라서, 신데렐라가 착해서 요정이 나타난 게 아니라
요정 대모는 절망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는 거라는 말이 있더라

 

요정이 지금의 내 앞엔 언제든 나타날 것 같아서.

오면 무슨 소원을 빌까 생각해봤는데

난 오빠 만나기 전으로 돌려달란 소원은 싫더라

 

대신 오빠가 날 잊어줬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고 싶었어

 

내가 오빠를 사랑한 기억은 아파도 그대로 갖고 여기까지만…

좋았던 추억 사진 물건 다 남아도 되는데 오빠만 날 놔주면-

 

오빠가 나와의 기억을 다 잊어도 좋으니그저 지금 날 자유롭게 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때문에 작은 먼지만큼도 후회는 없다.

 

 

 

다시 태어나면 너와 결혼할 것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으나

이번 생만큼은.. 나는 내 삶을 너에게 던졌다.

 

너에게 나를 걸어보자 생각하여 지금까지 왔다.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너와 함께 나름 아름답게 보냈으니 

남은 시간은 내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놓아달라고.

 

 

 

이터널 선샤인에서 보여주었듯, 

나는 기억을 모두 지우고 나서도 널 만나면 다시 사랑할 것을 안다.

 

반짝이는 눈, 나를 향한 갈망.

네가 보여준 거대한 세계는 아름다웠고, 내가 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너라는 렌즈를 씌워 함께 보는 세상이 180도 달라 보이는 마법을 부렸다.

그런 달콤함에 젖어 내가 그동안 지어둔 마음의 집까지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기억을 생각하면 난 언제고 마구 울음을 터트리게 될 만큼 나를 붙잡은 강력한 마법이자 저주였다.

 

사랑하고 행복하고 상처받고 좌절하는

짧지 않았던 여러 번의 순환을 거치면서 이제는 안녕을 고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다시는 너와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한다고.

 

 

가슴을 울리게 공감했던 평을 끝으로 마친다.

무차별한 권태의 폭격에도 파괴되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랑했던 이유가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들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그 모든 기억마저 사라진 뒤에도 사랑했던 흔적과 습관은 남아 우리의 등을 다시금 떠민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곳이 진창이든 꽃밭이든, 그래, 좋다. 다시 또 한 번.

- '이터널 선샤인' 아픈 기억 지운다고 사랑이 잊혀질까,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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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산하고 3일째이다.

날짜는 늘 가물가물한데

유산은 화요일이었으니, 오늘은 금요일이니 아무튼.

첫날엔 몸이 가벼웠는데 아마도- 수액이니 뭐니 잔뜩 몸에 꽂아대고 집어넣어서

괜찮았던건가보다.

 

어제부터 몸이 그렇게 물 먹은 솜처럼 무겁더니

오늘은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그렇게 피로하다. 1분정도 서있는 것도 힘들어서

의자와 스툴을 찾았다.

 

그래서 침대에 걸핏하면 누워서 멍하니 있는데

침대에 누우면 그렇게 별 생각이 많이 난다.

 

어머님과, 남편과.. 코리와..

 

 

방금은 그런 생각이 났다.

 

서운했던 것 중 하나인데,

결혼할 때 우리는 남편에게 양복과 구두를 해주었는데

남편은 내가 빌리는 웨딩드레스도,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웨딩드레스도 어느 것도 해주지 않았다.

당시의 남편 변명은...

'내가 직접 가서 고른것도 아닌데 뭐'

혹은

'내가 주문해서 만든 드레스도 아닌데 내가 사줘야해?' 였다.

 

 

너무 너무 서운했지만 나는 애써..

그냥 참았다. 그래. 자기가 주는건 본인이 골라서 주고싶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시부모님이 주시는 가방... 그래, 가방을 받으니까 그 것 대신으로 생각해야지...

 

 

 

그런데 이상하다.

서로가 생일 선물로라도 서로에게 사랑의 증표와 마음으로

선물을 주는 것 아닌가?

 

 

문득 모파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떠올랐다.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 장식을 산 남편

머리를 잘라 남편의 시계줄을 산 아내

 

그 남편의 시부모가 대신 목걸이를 사주었었다고 한들 그것이 남편의 마음이라고 보기에는-

크리스마스에 마음을 전했다고 보기에는 힘든 것 처럼.

 

내가 서운하고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받았기 때문에 나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부부로서의 그림은 모파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의 부부같은 것이었다.

부족하고 가난해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나의 폭포처럼 떨어지는 아름다운 머리와 오랫동안 간직한 소중한 물건을 희생해도 기쁘게 무언가 줄 수 있는 관계를 늘 바라왔다.

 

 

애써 참아왔던 것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설득해야하나 수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제 그만 벗어날 때가 된 것이지.

 

 

나를 이해해주는 세계로 가고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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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으면 별 별 생각이 다 나는데,
우울해질 때엔

몇 달 뒤 자유롭게
회사도 그만두고
하고싶은 것 할 수 있게 될 때
뭘 하면 좋을지 상상하면
금새 행복해진다.

몇 주 동안 서핑을 하자.
마음껏 질리고 새카맣게 탈 때까지.

한 군데 장기 체류해놓고.

예전에 갔던 불친절했던 양양 서핑샵에 가자.
나한테 관심도 없고
묻지도 않을 오지같은 거기로 가야겠다.
뭘 입고갈까.




뭔가 너무 아무것도 안들리는 고요속에서는 우울해지니
뭐라도 틀어놓고있고싶어지는데,
넷플릭스로 이미 몇 번 봤던 애니를 틀었더니
계속 말귀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버릇이 튀어나와서
휴식이 안되더라.



클래식이 듣고싶어졌다.
피아노곡을 듣자.
라흐마니노프를 할까 바흐를 할까
모차르트 진혼곡은 좋지만 지금은 넣어둬야겠지?

예브게니 키신과 정명훈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콘첼토 2번을 틀었다.
아이폰은 이 곡을 틀기엔 좀 아쉽다.

좋은 스피커를 집에서 가져와야하나.
거실에 있는 바깥 스피커를 쓰려면
시디로 틀어야 하는데 당근에서 찾아볼까.



콘서트도 다니고싶다.

피아노도 치고싶다. 다시 배워볼까.
우리집 좋은 피아노는..
어릴때에도 2-300했던 엄청 좋은게 시댁에 가있어서..
오니짱네 전자피아노를 가져올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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