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일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2.05.02 극복일기 4 - 늘 보던 것이 다르게 보인다

생각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는 두 가지다.

나른하고 피곤한.

때문에 동시에 굉장히 안정된 상태이기도 하다.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우울해지지도 못하는 약간 에너지에 불이 안붙는 상태다.

기쁨, 슬픔, 화남, 우울함등등 상반되는 감정의 표를 3D로 표현했을 때

XYZ축 어디에도 치우지지 않은

중간의 부유하는 어느 애매한 지점에 머무르는 감정상태라고 본다.

 

나의 경우 힘든 감정을 단시간에 마구 쏟아내고난 뒤에 그런 멍해지는 타이밍이 찾아오는데

요즘은 그런 시간이 잦아졌다.

 

 

몸은 피로하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할 기력도 없어 집안에만 계속 있다보면

몸은 여전히 늘어져도 머리로는 뭔가 할 것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잡생각들이 너무 많이 비집고들어오면 힘들기 때문에,

생각없이 볼 무언가가 필요하다 느낀 것이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충동적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틀었다.

너무 많이 봐서 지겨운 영화가 필요했다.

인묻들끼리 감정 다툼도 없고 적당히 예쁜 화면, 아름다운 음악.

거기에 무슨 대사를 할건지, 어떤 장면이 나올건지 달달 외우고있으니 내가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할 필요가 없다.

아무런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제격의 조건이 다 갖춰진 셈이었다.

 

멍때리기 좋은 영화 1순위였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후반부로 가다보면

주인공 하울이 그동안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만의 비밀 장소에 소피를 데려가는 장면이 있다.

산에 둘러싸인, 꽃이 만발한 들판과 늪과 작은 호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들판 한 켠에 덩그러니 서있는 한 채의 오두막을 보여주며

매해 혼자서 여름을 보내던 은신처라 소개한다.

 

혼자서? 하고 되묻는 소피에게

하울이 응,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어린 남자아이가

휑한 외딴집에서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장면이 상상되는 순간 전조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라, 내가 왜 우는거지 이유도 모르고 당황할 새도 없이

눈물 망치에라도 얻어맞은 듯 이유모를 서러움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난 뒤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많이 외로워서 그랬구나.

 

 

 

며칠 꽤 울고 웬만한 것으로 울지 않게되었길래 나는 내가 금방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나 어쩌면- 정상이 아닌지도 몰라.

함께 있어도 내가 많이 외로웠구나.

 

상황과 감정상태에 따라 작은 것도 이렇게 크게 보이고 다를 수 있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지금이 분명 힘든 시기이는 하나,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극복과 힐링의 시간이다.

이걸 잊지 말아야지.

Posted by 진배리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