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쓰는 이유

Space 2018. 1. 21. 23:44

머릿속 생각들은 늘 손보다 빨리 스쳐지나갑니다. 


특히 저는 탱탱볼처럼 머릿속의 생각들이 이리저리로 튀어나가기가 보통 사람들 이상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늘 글로 남겨야지, 하고 손을 키보드 위에 갖다대면 금새 사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내안의 것을 꺼내어놓고 속이 시원하려고 노트북을 켰다가 되려 답답해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아마도 글을 제대로 쓰시는 분들은 저와 같이 하나의 휘발과 같은 기억을 적어놓는 글이 아닌,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일년이고 다시 곱씹어 정제된 낱말을 꺼내실거에요. 걸음마와 같은 지금의 제 토막글은 짧은 하루의 찰나를 적어놓은 기록이자 일기일 뿐이니 다소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raw의 것 그대로 저라는 사람을 옮기고자합니다.


언제부턴가 열셋 넷 때부터 과거의 기억을 아주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자신을 알게되었습니다.

조기 치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중학생때 꽤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치매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고 회사원이 되어도 여전했습니다.

다행히 공부머리와는 달라 고등학교 3년치 공부는 다행히 머릿속에 끌어안고 수능을 무사히 치긴했지만 여전히 고민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세상에는 배움과 또 달리 여행의 기억, 친구와의 추억 등 기억해야하는 소중한 것들이 무척 많거든요.



오늘 저녁엔 어머니와 닭튀김을 먹다가, 예전 미국에 있을 당시 먹었던 P.F.Chang에서 비슷한 맛의 음식이 기억난다고 하시는거에요.

그런데 저는 그 날 누구와 먹었는지, 얼핏 그 곳의 분위기, 그 날의 기분까진 다 떠오르는데 그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건데.


사람들과 이야기할때면 이런 문제로 참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누군가와의 추억,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소중한 경험, 심지어는 사람의 배경과 이름까지.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꺼내들었는데 내가 잊어버린 게 들통나면 그 사람과의 관계도 가벼이 여기는 것처럼 보이기 쉽거든요.


그래서 콩벌레처럼 팍 움츠러들고말아요.



기린이 다시 돌아온 이유는 이거입니다.



매일 달라지는 30명에 가까운 알바를 기억하고 매니징해야하는 사람으로 일하면서 더해진 스트레스. 더욱 떨어지는 기억력. 움츠러들고 퍼포먼스는 낮아지며 자존감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너무나 힘든 시기를 겪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지만 의외로 공간적인 기억능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는 칭찬만 듣고 나왔습니다.


나의 이 증상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 채 고민하던 차에 옛날옛적 싸이월드를 들어갔는데,

제가 남긴 짤막한 글에서 스무살 스물 한 사람이 남긴 글인가? 누구 글을 따온건가 싶을 정도로 멋진 생각과 고민이 담겨있었습니다.

나랑 다른 사람인가? 전혀 다른 자아의 제3자인것만 같았습니다.

빛나는 대학생이 낯설기만 했던건 기억에서 잊혀져서인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내가 그때부터 차곡차곡 생각이 모여 발전한 결과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나 자신을 완전히 잊고살았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고 들이쉬는 숨에서도 무언가를 느끼며 사는 나였는데 말입니다.



결국 나에게 내린 치료법은 이겁니다.

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꺼내볼 수 있는 일기를 쓰자.

매일 느끼는 소중한 것들을 머리에서 잊는다면 나만의 펜시브를 만들어보자.



친구 누군가 그랬습니다.

일기를 왜 다 보라고 인터넷에 써? 나 혼자 쓰니까 일기인건데.


수년동안 내린 결론은 일기는 보통 혼자 보라고 쓰지만 형식이 없는게 일기고 수필이니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와의 관계가 고맙고 좋을때, 새로운 경험을 할 때, 피천득씨의 수필에서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생각한 것을 정리하고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쓴 하루의 기억, 좋은 마음, 느낀 것과 경험한 것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을 보는 뿌듯함과,

더불어 이 짧은 글을 보고 각자의 생각이나 경험이 또 생겨나는 작은 놀이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댓글을 달고 제가 글을 다시 보다보면 또 그 기억을 되새겨 볼 수 있겠지요. :)




키보드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을 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나인데 이 모든 것을 찰나의 기억으로 흘려보내버린다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나의 지나온 인생을 공부하다보면 제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있음을 깨닫게 될겁니다.




그래서 짧더라도 조금씩, 지금 시작합니다.

인생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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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배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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