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너건너 아는 지인이 몇 년 전 어떤 남자를 소개받았다.

소개팅에서 만난 그 남자는 정말 만나본 이래 가장 직설적이고 리드하더란다. 다르게 말하면,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하고 할말 안할 말 가려서 하지도 않아 기분이 나빴던 것이 한 두번에 아니라고 했다.

선으로 만난 터라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만났을텐데, 그래서 남자가 물어보더란다.

-언제 결혼을 하고싶으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고싶다.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다.

남자가 깜짝 놀라며, 왜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느냐고 했다. 본인의 형이 아직도 노총각이라 자기는 그렇게 되기 싫다며, 덧붙이는 말이,

당신 나이를 생각해라.
그렇게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시 스물아홉의 언니는 충격을 받아하며 분개했다.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

당시 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된 나는 그 때의 언니에 나를 대입시켜봤다.
나도 정말 철없이 사랑운운하며 손 놓고있는건가.


2.
패션 뷰티브랜드에 다니는 지인의 소개로 면접 기회를 얻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 회사에 다니는 또다른 언니에게서 난데없이 전화가 왔다.

-내가 웬만해서 이렇게까지 얘기안하는데 너 거기 절대 가지마라!! 헬오브헬이다!!!

하아아..

시장조사하러온 매장 앞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있었다.
나한테 맞는 것을 찾아내기엔 아직은 때가 아닌건가?

-네가 정 원한다면 면접까지 보는건 안말리겠지만 그 부서와 그 팀장 밑으로 들어가면 네 생활은 없을지도 몰라. 지금 잘 다니는 정직원 칼퇴회사 버리고 와서 네가 후회할까봐 겁이 난다. 네 말대로 와서 고생해도 곧 다른 좋은 부서에 배치될 좋은 운을 기대해보고싶다.

잘 맞는 회사에 가는 것도 결혼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이런 안개처럼 알 수 없고 타이밍이 절반이상인 도박같은 선택이라니.

마음이 복잡.


3.
그렇게 곧 면접 볼 브랜드 시장조사를 위해 백화점에 왔다. 지하에서 식사를 하는데 어떤 남자분이 다가와서 결혼정보회사를 소개하며 내 이름을 물어갔다.
학교와 이것 저것을 듣더니 아주 좋아하며 명함을 주고 가더라.

며칠전 만난 친구가 그랬다. 넌 선으로 사람만나라. 까다로운 나의 조건에 맞추려면 선을 봐야하지않겠느냐며.

그러던 와중에 노블레스 클럽이라니.
이것은 뭔가 절묘한 타이밍인가? 나는 지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인생의 전환 기회를 잡은건가?
아니면 컨설팅비를 받아내려는 달콤한 상술, 그도 아니면 애꿎은 나의 개인정보를 털린 것인가.

정말 백마탄 왕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꿈꾸는 달콤한 결혼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소개팅이라니 조금 기대하게 되잖아.

설레는 동시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복잡한 기분.
묘한 생각이 드는 밤.




무엇이 되었던 재미있는 기억이 될 날인 것 같아.


집에돌아오는 길엔 천천히 걸으며 음악을 반복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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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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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배리움
,

"
독수공방하며 사는 백수가 골방에 있는 영화를 다시 꺼내봅니다.
흘러간, 그러나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있는 영화를 영상으로 리뷰합니다.
"




며칠전 독수골방 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다. 발견했다, 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은 여러번 나에게 주는 추천영상에 떠있던 것을 외면하다 한참이나 후에야 클릭하게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평론가들이 보여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 지루한 영화보여주기와는 다른 테마별 리뷰가 흥미롭다. 새로운 시선으로 인물을 해석하는 것은 더욱 시야를 넓혀준다. 특히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늘 궁금했던 점이나 배경에 대한 의문이 절반에 가까운, 재밌고도 어려운 애니였는데 깊있게 파헤쳐주어 정말로 좋았다.


게다가 깔끔한 영상편집, 크게 거슬리지 않는 담백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이 애용하는 미니멀한 로고는 물론,담담한 나래이션의 대본마저 군더더기없이 깔끔해 모두 다 마음에 들어 구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선 이분 목소리가 너무 멋지다는 댓글을 종종 볼수있는데, 직접 들어보시라.
필자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생각났는데 목소리도 그렇지만 나긋나긋한 분위기가 그렇다. ... 결론은 목소리 좋음. ㅋ.


영화는 물론 애니를 특히 좋아하는 내가 시달소, 하울의 움직이는 성, 늑대아이등 취향저격 탕탕탕인 그의 채널목록을 봤다면 진작에 팬이 되고도 남았겠지만 여태까지 방문하기를 꺼렸던것은 추천된 영화가 '늑대아이'였기 때문이다.




가슴먹먹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박혀 심장에 뭐가 쿡 박혀 빠져나오지 않을 것 처럼 답답했던 영화이다.

항상 웃고있는 하나라는 주인공의 성정이 나와는 너무 달라,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말도안되는 인물 설정을 했다 생각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감독을, 작화를,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에서 (몰래) 좋아했다.




- 늑대아이는 한때 어떤 남자가 꼭 함께보자며 노래를 불렀던 영화였다.



하지만 그 남자를 만날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었고 가슴아팠음에도 기어코 남자를 밀어내며 영화관에서 늑대아이를 혼자 봐버렸다.
보란듯이.
그 사람또한 아쉬워하며 나중에 전화통화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는 곧 그 남자가 되어 화석처럼 굳었다. ​​언제까지고 때가 될때까지 날 기다리겠다던 그 남자에게서는 2년 쯤 후 결혼소식이 들렸다.




늑대아이를 보면서는 어쩔 수 없는 좋음과 싫음이 아주 복잡하게 얽힌 감정이 꾸륵꾸륵 나온다. 어쩔 수 없는 갭의 현실, 가슴찢어지는 이별, 나라면 무너질 것 같은 책임감과 앞으로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는 캄캄함이라니. 현실에서 느끼고있는 나의 진짜 감정들을 하나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고싶지 않았고, 내용도 그 밖의 기억도 무엇하나 편안한 것이 없어 포스터만 빳빳하게 간직해두었다.
그런 영화를 짧게나마 다시, 그리고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백수골방의 '늑대아이에 숨겨진 의미들'
http://youtu.be/T9J7hnydzEw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무척 좋아하고 그 화면을 사랑해서 졸업작품에서 그의 뭉게구름 기법을 사용하고자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 작화도 스토리도 탄탄함을 따라갈 수 없어 연구만 하고 그쳤던것으로 기억하지만 백수골방의 영상을 통해서는 뭉게구름의 의미도 알게되었다.
(일본어 공부 하면서도 그런 컨텍스트를 몰랐다니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 생각함.)


원래부터 알고 좋아하던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보고 또 봐도 원래 느끼던 것 이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있다면, 자신있게 백수골방을 추천한다. 더 깊은 눈으로 영화를 이해하게된다.



나또한 저 다락방 깊숙히 묻어두었던 마음아픈 영화들도 하나둘 끄집어내어 다시 보고자 도전하려한다.

거짓말 보태어 90%가 좋아하고 봤던 영화를 다루어 보는 맛이 난다.

다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먹먹하고 (건축학개론, 조제호랑이물고기들)
이해할 수 없고 (500일의 썸머, 괴물)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시달소, 늑대아이)
영화가 많아서- 보면서도 씁쓸한 입을 어쩌지 못하고있다.

하나하나마다 깃든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 상처를 후벼파게될지 모르지만
한 번쯤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보게되는 10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강추.



Posted by 진배리움
,

수첩

Space 2016. 4. 9. 23:35

​​​​​​​​​​​​

예전 무척 바쁜 회사에 다닐적엔 늘 작은 수첩을 들고다니며 수시로 메모를 하고 to-do list를 적어돌아다녔다. 눈​코뜰 새 없이 너무너무 바쁜 곳이었고, 대고 쓸 생각따위 할 수 없이 정신없던 환경이라 안에 메모들은 겨우 알아볼 수 있을정도의 악필이다.



열심히 하려 노력했던 지난날의 열정을 발견할 땐 참 파릇하게 빛났던 내 자신이 예쁘고 자랑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

또, 군데군데 피폐해지지 않으려고 시구절을 써놓거나 읽고싶은 책을 리스트업해놓는 등 나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흔적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때보다도 심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생각보다 어리고 여렸던 나는, 인간관계를 잘 쌓고 지내왔는데, 마지막 회사을 나오기 전 작은 실수로 의도치않은 오해를 받으며 그간 쌓아왔던 신뢰와 좋은 평판이 무너졌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에 겹쳐서 제대로된 해명과 수습도 못하고 회사를 나왔다.

매순간을 진심으로 대해왔건만 사람들에게 오해로 상처를 입힌 것에 미안한 마음으로 나도 큰 상처를 입었고, 가슴아픈 감정들이 뒤범벅이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할만한 물건들은 모두 치워버렸다.


그러던 오늘, 서재에 10년도 더된 영어책과 구닥다리 토익책들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하며 먼지덮힌 책들을 들춰보는 사이에 껴있는 이 꼬마수첩 두개를 발견했다. 옆에 계신 아버지는 버려도되는지 모르는 것들을 모아둔 책장이라고 덧붙이셨다. 정말 좋아하는 토닥토닥의 일러스트수첩은 정말 아꼈던 아이들인데.. 표지를 봐도 기쁘지 않다니..



오해를 불러일으킨 나의 부족함을 사과할 재주는 없었다.
해명이고뭐고를 할 시기는 지난지 오래다.
작은 오해로 떠날 사람이라면 진즉에 떠날 인연이라고 애써 나를 위로했지만 마음이 아린 것을 어쩔 수가 없었고, 때문에 나는 몇년이 지난 오늘도 같은 감정을 부여잡고 눈이 부을 것 같은 얼굴을 참고있다.



어찌해야할 지 몰라 다시 넣어둘지,
혹은 아는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제대로 알리고자 문제의 그 sns에 글을 써 마음을 전할지 고민을 하고있다.



우연히 마주친 이 수첩으로 마음이 편해질 기회를 내가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용기가 필요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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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배리움
,

죽음안으로

Space 2016. 4. 7. 00:38

나의 길을 가겠노라고,
주위 숱한
참견에
비칠듯이 귀가 얇아지지않겠다고-
너를 느낀사람은 나뿐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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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배리움
,

내가 좋아하는 만화중에 러브 콤플렉스 라는 일본애니가 있다.

주인공이 애인을 만들고싶다며 졸라 미팅을 하고난 뒤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쩜.
이렇게까지 정확한 설명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


눈이 높다 와 까다롭다 는 조금 다른 경우인걸 모르는 것이 아님에도 결국 결과는 같다.

애인이 없다는 것.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살면서 몇 번 없다는 사람은 아마도 뭐가 되었든 주변에서는 좋게 말해서 '넌 눈이 높아서 그래' 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있다. 누구도 편히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다. 사랑에 밀당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혜민스님의 말씀이 너무도 와닿았다.
적어도 사랑의 걸음걸이 속도를 맞출필요는 있다, 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 가슴속에 담고있는 말이라 정확한 워딩이 아닐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친구가 말했다. 애초에 사랑이란 없다고. 너는 이미 환상속에 사랑할 사람을 정해놓고 앞에 대상을 그 환상이라 여기며 포장할 뿐이다라고.

충격적이었던 이 말은 어느 학자의 이야기를 해준 것일테지만 어쩌면 나는 그것을 이미 마음 속으로 잘 알고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환상의 동물만큼이나 까다로운 사랑의 피사체를 그리고있어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그래서 약간의 호감이 생긴 누구를 제대로 쳐다보며 현실을 보려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다. 접근전에 이르렀을 때 겁쟁이는 고개를 돌린다고했다. 내가 딱 그런 자세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조금 후회한다. 지금은 주변의 친구들과 세상을 알가며 그 환상조차도 조금은 현실적으로 조형해가는 지혜를 얻고있음에 아주 감사할 따름이다. 누군가의 압력이 아니라, 내가 유해지고 있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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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배리움
,

시집을 샀다

Space 2016. 4. 3. 23:11




알라딘에서 시집을 샀다.

회사동료가 알라딘 서점에서 받아온 사은품을 보여주며 으레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그 친구가 보여준 노트가 참으로- 살 수 없는 그런 류의 물건이었다. 해리포터 그리핀도르의 문장이 그려진 길쭉한 노트였다.

이야기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성격은 초등학교때부터 있었는데 중학교시절 해리포터도 그랬다. 그래서 지금은 그닥 열광하지않지만 어릴 때 향수와 희귀템에 대한 엄처난 수집욕이 나, 그날로 알라딘에 가서 도서를 구매했다.

알라딘은 중고서점만 이용하다가 이렇게나 좋은 아이템들을 책과 끼워 팔다니, 책을 다섯권 샀는데 아이템이 묶인 것으로 샀더니 네개나 왔다.

모두가 마음에 드는 괜찮은 마감의 물건들이었다.
빨간색 북스탠드, BOOKS I'M READING 이라고 씌어진 북엔드, 윤동주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 재발행을 기념한 틴케이스의 메모지와 이 해리포터 메모노트까지.



어제는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오랫동안 아버지 생신선물을 뭐로할지 끝내 결정하지못하고, 핸드폰 사진으로 아버지 선물을 어머니와 함께 골랐다.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케이크를 주문하고 더 예쁜 카드를 고르러 일부러 강남 교보문고까지 다녀왔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고 죄송스러운 이 마음은 어떻게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딱인 이 물건들을 감히 선물이라고 포장하지않고 하루 지나서 드렸다.
그렇게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집을 옮겼다.

다시 이 오두막에 오니 마음이 놓인다.
누가 보아주길 바라는 그런 곳이 아니었기에.

어차피 하루의 짧은 생각을 털어놓는 일기장에 지나지않기에-

쉼터는 직장에서 먼 저 멀리 외국 별장에 있어야 더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이곳만큼은 우리들만의 공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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