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지의 '남친있음'이라는 웹툰에서 연극 연습을 하는 한 장면이 있다.

'돈 많은 숙부가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카가 자기 몫의 유산을 뺏기는 게 화가 나 쫓아왔다가 숙모가 될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
​돈에 미쳐 결혼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당신에겐 사랑이 돈으로 바꿀 만큼 가벼운 겁니까?
"
라는 조카의 말에
여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너무 간절히 바랬고,

그래서 더욱 간절히 마음이 멀어지길 바랬다.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2003)에서 그레이스(제니퍼 애니스톤)가 신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 주여. 저는 그를 아직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더이상 사랑하고싶지 않아요-

더이상 상처받고싶지 않아요 제발-

제발 잊게해주세요. 제발 제가 보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고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너무나도 자주 들리는 지루한 명제일뿐이다.

하지만 본인에게서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오면 다시금 놀래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내 자신이 설마? 그 정도까지야? 라고 생각하게되는 것일것이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늘 주고 받음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혹은 그 양에 대해 서로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드는 어리석은 생각들- 예를 들면 예전 누군가에게서 주기만 했으니 이제부턴 받는 것만 해야지, 와 같은-을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간사한 이기주의자인지를 깨닫게 된다.

6년 전 내게 무척이나 잘해주었던 한 남자를 연고없이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무서워서-진짜 무서운 것이 너무나 큰 이유였다- 차버렸다.
당시 난 너무 순진하고 어려서 '혼자'사는 어떤 남자가 길에서 번호를 물어봐 연락을 하고 내 자취집이 어느 골목(사실 그 주변이지만)이라는 걸 안다는 사실부터 이미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괜한 상상과 그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과도한 걱정이긴했다.

망상에 눈덩이처럼 커진 두려움에 연락도 하지말라며 거절했다. 

매정했다.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던 그는 '지나가면서라도 보면좋겠다' 라는 말에 또 덜컥 무서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둘러 본 내 작은 자취방의 전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참 진실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줄 줄 아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청년이었다.  여러가지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은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그런 사랑을 줄 줄 아는 깨끗한 목화솜같은 느낌은 이상하게도 잘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두 번의 연락 끝에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지난 속내를 털어놓는 술자리에서조차 말할 수 없었던 것 한 가지는

그를 예전 22살에 만나면 안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젊을때부터 평생을 함께할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일찍하기를 꿈을 꿨는데, 이 사람은 당시 4년이나 넘게 누군가와 사귀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오랜 연애가 얼마나 지루하고 덧없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미래를 꿈꾸기에 당시는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미래를 함께하고싶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그 때 사귀어버리면 5년 6년 연애를 지속해 결혼하기까지 너무나 험난해보였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냐 라고 말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연애에서 그칠 인연이라면 만나지 말자, 라며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증거나 반증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그 오랜 시간 이후로 난 남자친구라고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사람이 있었지만 실망스럽게도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정말 좋아할 수 있는, 계속 함께 할만한 사람을 진실되게 찾았고 때문에 불장난같은 연애를 바랐다면 누구든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재밌는 연애라이프를 살았겠지.

그리고 그렇게 6년만에 다시 만난 사람과 나는
하루동안 연락이 끊기는 사태를 겪으며 연애 안해본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조바심 어린 끙끙댐을 앓고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흘러간 시간이
기다린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어질 만큼

이상하게 갑작스레 사랑에 빠져버린 것 같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나조차 무척 놀라고있다.

그리고 예전에도 이랬나? 싶을 정도로
아주 뜨겁게 다가오다가도
아주 차갑게 연락이 뚜욱 끊기기도 하는 이 남자를 보며 마음이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사이로.

6년 전보다도 더 못한 사이가 되어 이젠 미련조차 안 남는 사람이 되어버렸겠지-

그리고 나는 위에 나왔던 대사를 차례로 읊으며 마음이 떠나버리길 바란다고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아마 한참동안은 그와 관련된 곳, 음식, 음악, 글은 보지않을 것 같다.

그렇게 보내고 털고 치유되어 돌아와야지.


Posted by 진배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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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불안의 근본

Posted by 진배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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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영속성

Space 2014. 11. 4. 21:41

참 재미있다.

 

1.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그 당시에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 마음이 다 헐어무너질 것 같은데

막상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이 의외로 별 것 아니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당시에 얼마나 간절하고 죽을 것 같이 사랑하는지가 오래 남는 사랑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가정했을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사람인지/금방 잊혀질 사람인지의 여부가 앞으로 계속 만남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속성으로 작용하지는 미지수이다.

게임처럼 헤어지기 이전을 Loading하여 관계를 이어갔을 떄 얼마나 다음 탄을 깰 수 있는지 시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 것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결론은

사랑도 결국은 복불복일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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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배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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